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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사회가 제시한 길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 길이 정말 '나의 길'일까요? AI 시대가 열리며, 정해진 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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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공부 → 더 좋은 대학교 → 더 좋은 회사 → 더 많은 재산 → 더 좋은 집
사람들은 사회가 만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더 많은 악셀을 밟기도하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휴게소를 들립니다. 사회가 만들어준 고속도로는 때로는 울퉁불퉁하지만 꽤 깨끗합니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자유가 있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달려갑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 자유를 쟁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의심 없이 악셀을 밟습니다.
제가 딱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 길을 가고 싶었나요?”
설령 그 길이 맞다고 해도, 안타깝게도 이제 그 고속도로는 곳곳이 끊어지고 안개가 자욱합니다. AI라는 새로운 시대가, 과거의 내비게이션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속도로 밖, 누구도 가보지 않은 나만의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길에는 표지판도, 내비게이션도 없습니다. 그 길의 끝이 절벽일지, 아니면 보물 창고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불공평합니다. 누구는 깨끗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좋은 집을 가졌는데, 나는 늪지대일지, 협곡일지, 절벽일지도 모르는 곳을 가라니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이 불공평함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가진 유일하고 진정한 '자유'는 아닐까요? 고속도로 위에서는 정해진 목적지 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고속도로 목적지에 있는 유한적 자원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가려 노력합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만난 인연은 그저 경쟁자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연히 만난 인연은 고속도로의 인연보다 훨씬 뜻 깊고, 파트너가 될 확률이 큽니다.
주변 환경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고속도로 위에서 '주변 환경'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자,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는 ‘배경’일 뿐입니다. 운전자는 앞차와의 간격과 계기판에만 집중할 뿐, 창밖의 나무 한 그루, 들꽃 한 송이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은 "저기서 쉬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여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방해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에게 '주변 환경'은 살아있는 ‘정보’이자,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신호’가 됩니다.
근데, 내비게이션도 표지판도 없는 길을 어떻게 신뢰하고 또 어디로 걸어가야 할까요?
이미 정답은 감정이라는 언어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숫자를 다룰 때 두근거림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감정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의 단서를 이미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감정 나침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귀 기울인다면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감정 표현조차 안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경쟁자가 되는 고속도로 위에서 감정 표현은 적에게 나의 약점을 알려주는 꼴이 되니, 사람들은 감정 표현은 안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많이 연결되어있지만 가장 고립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스타와 카톡을 통해 언제든지 친구의 소식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결은 대부분 우리의 ‘껍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잘 나온 사진, 즐거운 순간, 성공의 증거를 공유하며 서로의 삶을 관람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과 고민, ‘안개가 낀 듯한 씁쓸함’은 나눌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화려한 껍데기를 보며 나의 알맹이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잉 연결 시대의 정서적 고립’의 본질입니다.